어머니의 날(5월 둘째 일요일)과 아버지의 날(6월 셋째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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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날을 5 둘째 일요일에 기념하며 아버지의 날은 6 셋째 일요일에 축하한다. 이날 미국의 자녀들은 아버지, 어머니, 혹은 자신의 인생의 부모 같은 존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대접함으로써 감사를 표한다.

어머니의 날

5월 둘째 일요일에 미국의 자녀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어머니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선물한다. 이날은 자녀들이 어머니나 자신의 삶에서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온 누군가에게 그들의 존재에 얼마나 감사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하는 날이다.

잉글랜드는 가장 먼저 어머니들을 기억하는 날을 따로 지정한 국가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부유층의 하인으로 일했던 18세기에 그들이 집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귀성 일요일(Mothering Sunday)’이 정해져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노동과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이런 관습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여전히 3월의 특별한 날에 어머니들을 기린다.

미국에서는 당대의 유명 작가이자 사회개혁가였던 줄리아 워드 하우가 1872년에 어머니의 날 아이디어를 처음 소개했다. 그러나 어머니들을 기리는 공식적인 날이 제정된 것은 무엇보다 아나 자비스라는 한 딸의 끈기와 사랑 덕분이었다. 아나의 어머니는 아나의 가족이 목사이던 아버지를 따라 웨스트 버지니아, 다시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로 옮겨 다니며 사는 동안 가족의 강인함을 유지하는 버팀목이었다. 어린 시절 아나는 어머니를 도와 주로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이었던 흰색 카네이션으로 채워진 정원을 가꿨다. 1905년 5월 5일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나는 그녀를 기리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이 다녔던 웨스트 버지니아의 교회 목사에게 어머니를 추모하는 설교를 해달라고 청했다. 같은 일요일에 필라델피아에서 아나의 가족이 다녔던 교회의 목사 역시 어머니의 날 특별 예배를 통해 그녀의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기렸다. 아나 자비스는 의회 의원들에게 어머니들의 사랑과 노고에 감사하는 날을 별도로 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1910년, 웨스트 버지니아 주지사가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선포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모든 주에서 어머니의 날을 기념했으며, 1914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국가 차원의 첫 어머니의 날을 공포했다. 어머니의 날 아침에 어떤 어린이들은 어머니의 침대에 아침식사를 가져가는 전통을 지킨다. 또 직접 만들거나 미리 구입한 선물을 어머니에게 주기도 한다. 성인들 역시 어머니에게 카드나 선물, 또는 어머니의 날 공식 꽃인 붉은 카네이션을 비롯한 꽃을 선사한다. 어머니가 이미 고인이 된 경우에는 흰 카네이션이나 다른 꽃을 들고 무덤을 찾는다. 어머니의 날은 일년 중 미국의 식당들이 가장 붐비는 날이다.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날에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버지의 날

미국은 자녀들이 아버지를 기리는 공식적인 날을 두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6월 셋째 일요일이 되면 미국 전역의 아버지들과 누군가에게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는 모든 남성들이 선물을 받거나 식사를 대접받거나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인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의 날의 기원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혹자는 1908년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교회 예배에서 시작됐다고 하고, 워싱턴 주 밴쿠버에서 아버지의 날을 처음 기념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또 다른 스토리에 따르면 시카고 라이언즈클럽 회장이었던 해리 미크가 1915년에 자신의 생일에서 가장 가까운 날짜인 6월 셋째 일요일을 골라 이 단체와 함께 처음 아버지의 날을 기념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날이 언제 시작됐든, 아버지의 날을 확산시키는 데 가장 앞장선 것은 워싱턴 주 스포캔에 살던 소노라 스마트 도드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날 설교를 듣던 중 아버지의 날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매우 훌륭한 아버지를 뒀다고 생각했다. 남북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어머니 없이 6명의 자녀를 홀로 키웠다. 어른이 되자 소노라는 아버지의 희생과 홀아버지로서 그가 얼마나 훌륭하게 아버지 역할을 해냈는지를 큰 고마움과 함께 깨달았다.

1909년, 소노라는 자신이 다니던 스포캔 교회의 목사와 몇몇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생일인 6월 5일에 아버지들에게 헌정하는 교회 예배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녀가 제안한 날은 목사가 예배를 준비하기에 시일이 너무 촉박해서 목사는 몇 주 후인 6월 19일에 헌정 예배를 집전했다. 그 이후 워싱턴 주는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기념했다. 자녀들은 특별한 디저트를 만들거나 아버지와 떨어져 살 경우 아버지를 찾아 뵀다.

여러 주와 단체들이 연례 아버지의 날 선포를 위해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기 시작했다. 1916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이 제안을 승인했지만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아버지의 날을 국가적인 날로 만든 것은 1924년이 되어서였다. 그는 공식적인 아버지의 날 지정은 “아버지들과 그 자녀들 사이에 보다 친밀한 관계를 확립하고 아버지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온전히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이후 매년 6월 셋째 일요일에 전국의 가족들이 아버지를 기린다. 1966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아버지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정하는 대통령 포고에 서명했다.

아버지를 찾아 뵐 수 없는 자녀들은 보통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거나 카드를 보낸다. 카드는 전통적이고 감상적인 내용을 담을 수도 있고 카드를 개봉할 때 아버지들이 웃을 수 있도록 기발한 내용이 담기기도 한다. 아버지의 날 선물은 상점에서 구매하거나 직접 만들 수도 있으며 전통적인 선물로는 넥타이, 셔츠, 스포츠 용품, 자녀가 직접 그린 그림 등이 있다. 어떤 자녀들은 ‘아빠’가 필요할 때 언제나 옆에 있어 주는 아버지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