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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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한 국경일인 노동절은 노동자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제고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노동절은 9월 첫째 월요일이다.

열한 살이던 피터 맥과이어는 뉴욕 거리에서 신문을 팔았다. 그는 구두를 닦고 상점을 청소했으며 나중에는 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다. 때는 1863년이었고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막 남북전쟁에 참전한 처지였다. 피터는 어머니와 여섯 남매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19세기에 유럽 등지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들은 상당수가 뉴욕과 시카고를 비롯한 대도시에 정착했다. 그들은 생활 여건이 자신들이 애초에 꿈꿨던 것처럼 풍족하지 않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다수의 이민 가정은 도심 빈민가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했다. 여섯 세대가 한 집에서 거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근로 환경은 그보다 더 심각했다. 남성과 여성, 심지어는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공장, 방직공장, 제철소, 광산, 공사장에서 일했다. 그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하루 12시간 내지 14시간을 일해야 했으며 1주일에 7일을 일터에서 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만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며 휴가나 복리후생은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몸이 아플 때에도 해고가 두려워 억지로 출근을 해야 했다. 수천 명이 일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노동자의 권리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공장주는 노동자를 제멋대로 취급했다. 이민 노동자들의 상황은 특히 취약했다.

피터 맥과이어는 열일곱 살에 피아노 가게에 도제로 들어갔다. 새 직장에서 상업을 배울 수 있었던 까닭에 그 전까지의 일자리들보다는 나았지만 그는 여전히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 그는 밤이면 경제학이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모임이나 강의에 참가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 중 하나는 근로 조건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위험한 작업 환경과 불확실한 고용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근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 조합을 결성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1872년 봄, 피터 맥과이어를 비롯한 10만 명의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으며 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하면서 가두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터는 향후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노동 운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듬해에 그는 노동자와 실직자들을 상대로 군중 강연에 매진했으며 정부에 일자리와 구제 기금을 요구하며 로비를 벌였다. 피터 맥과이어에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공공의 평화를 위협하는 자’로 인식됐다. 시 정부는 그의 요구를 무시했다. 피터는 기업주들 사이에서 골칫거리로 여겨졌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동부 해안을 남북으로 오가며 노동자들에게 조합 결성을 촉구하는 강연을 시작했다. 1881년에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한 그는 현지 목수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목수 연맹을 조직했으며 이를 계기로 전국 목수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그는 훗날 전미 목수·목공 연맹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labo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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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별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방식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공장 근로자, 부두 노동자, 공구 제작공들이 하루 8시간 노동과 고용 안정성, 직업의 미래를 보장받을 권리를 속속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피터 맥과이어와 전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자신들의 투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할 목적으로 노동자의 날을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독립기념일과 추수감사절 중간에 해당하는 9월 첫째 월요일을 선택했다.

1882년 9월 5일, 제1회 노동절 퍼레이드가 뉴욕에서 개최됐다. 2만 명의 노동자들이 브로드웨이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그들은 ‘노동이 부를 창출한다’와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여가!’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퍼레이드가 끝난 후에는 도시 전역에서 피크닉이 열렸다. 노동자와 행사 참가자들은 아이리시 스튜와 집에서 구운 빵, 애플파이를 즐겼다. 야간에는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노동자를 기념하는 날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모든 주가 노동절을 지정했다. 1894년에 의회는 노동절을 국경일로 제정했다.

오늘날에는 해마다 9월 첫째 월요일이 돌아오면 차분하게 노동절을 기념한다. 몇몇 도시는 퍼레이드나 지역 단위의 피크닉을 주관한다. 상당수 정치인들은 이날 유세를 시작으로 선거 캠페인에 ‘돌입’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은 노동절을 여름의 끝자락으로 인식하며 해변이나 유명 휴양지는 마지막 3일 연휴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다수의 학생들은 노동절 직후에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