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계 미국인

First black Senator and Representatives: Sen. Hiram Revels (R-MS), Rep. Benjamin S. Turner (R-AL), Robert DeLarge (R-SC), Josiah Walls (R-FL), Jefferson Long (R-GA), Joseph Rainey and Robert B. Elliott (R-SC)
First black Senator and Representatives: Sen. Hiram Revels (R-MS), Rep. Benjamin S. Turner (R-AL), Robert DeLarge (R-SC), Josiah Walls (R-FL), Jefferson Long (R-GA), Joseph Rainey and Robert B. Elliott (R-SC)

북아메리카로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마지 못해 끌려 온 한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1619년부터 미국에서 노예의 수입이 불법화된 1808년까지 노예로 끌려 온 500,000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노예와 그 후손을 소유하는 관행은 계속되었고 특히 밭일을 할 노동자들이 많이 필요했던 농지가 풍부한 남부 지역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노예 제도 철폐 움직임은 1861년 4월 북부의 노예 제도를 철폐한 주들과 남부의 미 연방을 탈퇴한 11개 주를 포함한 노예 제도를 시행하는 주들 사이에서 남북 전쟁이 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남북 전쟁이 중반으로 치달을 즈음인 1863년 1월 1일에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연방에서 탈퇴한 여러 주를 대상으로 노예 제도를 철폐하도록 하는 노예 해방 선언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발표했다. 노예 제도는 1865년 수정 헌법 제 13조가 통과 되면서 미 전역에서 폐지되었다.

그러나 노예 제도가 철폐된 후에도 미국의 흑인들은 인종 차별과 수준 낮은 교육의 속박을 받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기회를 찾아 남부의 농촌 지역에서 북부의 도시 지역으로 국내적 이민을 떠났다. 그러나 도시로 이주한 많은 흑인들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으며 법과 관습 때문에 백인들과 떨어져 소위 게토(ghetto)라고 불리는 빈민가에서 살아야 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의 주도로 거부운동(보이콧), 행진을 비롯한 기타 비폭력 저항 운동을 통해 법률에 의한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고 인종적 편견에 대항했다.

이 민권 운동은 인종을 불문한 200,000여 명이 운집한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킹 목사가 “나에게는 언젠가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였던 이들의 자식들과 노예의 주인이었던 이들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둘러 앉을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언젠가는 나의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 받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오래지 않아 미 의회는 투표, 교육, 고용, 주거, 공공 시설 사용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12.7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흑인들은 뛰어난 발전을 이루었고 흑인 중산층도 상당히 증가했다. 1996년의 통계에 따르면 직업이 있는 흑인 중 44 퍼센트가 서비스 업종이나 육체 노동을 필요로 하는 직업보다는 관리직, 전문직, 행정직 등 “화이트 컬러”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같은 해의 다른 통계에 따르면 18세에서 24세의 흑인 중 23 퍼센트가 대학생으로, 1983년의 15 퍼센트에 비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흑인들의 평균 수입은 백인들보다 낮으며 흑인들의 실업률, 특히 청년층의 실업률 또한 백인들에 비해 높다. 그리고 많은 흑인 미국인들은 여전히 마약과 범죄가 들끓는 도시 빈민가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민권 운동의 초점이 바뀌고 있다. 반 차별 법안들이 효력을 발휘하고 흑인들이 지속적으로 중산층에 편입되면서 정부가 과거에 자행되었던 차별의 영향에 대한 개선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의 여부가 논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소수자 우대 정책인 이른바 “차별수정계획(affirmative action)”에는 사업장에 특정 수의 흑인(또는 다른 소수 민족)을 고용하거나 학교에 특정 수의 소수 민족 학생을 입학시키거나 소수 민족 대표가 선출될 확률이 높아지도록 하원 의원 선거구를 정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필요성, 효용성, 공평성에 대한 대중의 논란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거세졌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미국 내 백인 시민들의 태도일 것이다.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한 때로부터 한 세대가 훨씬 지났다. 특히 미국의 젊은 층은 모든 인종에 대하여 새로운 존경심을 보이고 있으며 다양한 배경과 사회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백인들이 점차 흑인들을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