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An artist's concept portrays a NASA Mars Exploration Rover on the surface of Mars. Rovers Opportunity and Spirit were launched a few weeks apart in 2003 and landed in January 2004 at two sites on Mars. Each rover was built with the mobility and toolkit to function as a robotic geologist.
An artist's concept portrays a NASA Mars Exploration Rover on the surface of Mars. Rovers Opportunity and Spirit were launched a few weeks apart in 2003 and landed in January 2004 at two sites on Mars. Each rover was built with the mobility and toolkit to function as a robotic geologist.

2001년 1월 20일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미국의 4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8년 만에 다시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대통령 선거는 2000[김병두1] 년 11월의 투표일에 투표가 이루어졌지만 투표 결과의 재개표 문제를 둘러싸고 소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투표일 이후 5주가 지나도록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는 진통을 겪었다. 결국 12월 12일 대법원에서 플로리다 주의 재개표를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플로리다의 25개 문제 선거구를 둘러싸고 5주 동안 벌어졌던 소송과 대통령 선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국민 화합이었다. 그는 미국 국민들에게 미국의 원칙을 지키는 한편 성숙한 시민 의식을 함께 발휘해 줄 것을 촉구했다. 취임 연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선거 당시에나 치열한 접전 끝에 투표를 마친 후에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간의 협력 관계를 강조했던 부시 대통령의 촉구 내용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행정부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발표했다. 그러한 시급한 정책으로는 학교 제도의 개혁, 감세, 사회보장제도와 의료 보호 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를 강화하는 문제 그리고 미국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문제 등이었다. 그는 오늘날과 같이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시대에는 그 자체가 여러 가지 도전을 던져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문제점들이 나타날 때에 우리의 후손들에게 넘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이 축복 받은 시대에 용기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에 뉴욕, 워싱턴 D.C. 및 주변 지역 그리고 펜실베니아에 대한 테러 공격이 발생하면서 미국의 정책적 우선 순위는 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국제 사회는 전세계적인 테러 공격의 위협에 대하여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긴밀한 협력을 통하여 대처했다. 북대서양회의(North Atlantic Council)는 북대서양조약법 제5조를 발동하여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은 모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모든 회원국들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규탄하고 회원국들에게 “극악무도한 테러 행위를 저지른 테러 분자들, 그러한 행위를 조직한 자들 그리고 지원한 자들”을 모두 응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승인했다. 그 후 미국은 외교, 경찰력, 정보 기관, 금융 조사, 군사적 행동 및 인도주의적 지원 등 모든 가능한 국가적 수단과 국제적 수단을 사용했다.

미 행정부 관계자들은 9.11 테러 공격의 책임이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알 카에다와 협력 단체 및 지원 조직들에 대한 전면적인 응징에 나섰다. 2001년 10월 초 미국은 1996년부터 알 카에다에게 거점을 제공해온 탈레반 정권과 아프가니스탄의 알 카에다 거점들에 대하여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이라는 작전 명에 따라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당시 작전에서는 총 136개국에 달하는 국가들이 미국 정부에 다양한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항구적 자유 작전의 성공으로 탈레반 정권은 축출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김병두2] 발표한 자신의 연두 국정연설에서 이라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서 요구하는 대로 대량 살상 무기(WMD)를 폐기할 것을 거부하고 있으며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테러 단체들에게 인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안보에 있어서 중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2년 9월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 사찰단과의 협력 하에 대량 살상 무기들을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다국적군을 구성하여 대량 살상 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군사적 공격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2년 1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제1441조를 채택하고 이라크에게 “무장해제(disarmament)의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대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2003년 1월과 2월에 미국은 페르시아만 인근 지역의 주둔 군사력을 증강했으며, 부시 대통령을 비롯하여 미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과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은 계속해서 이라크는 유엔의 무기 사찰단의 조사에 전폭적으로 협력해야 하며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 한편, 프랑스, 독일, 러시아 및 중국은 무기 사찰단이 활동할 시간을 더 연장해 줄 것을 촉구했다. 결국 2003년 3월 19일 이라크를 무장해제하고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기 위하여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을 개시했다. 2003년 4월 9일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붕괴되었다.

테러를 응징하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금지하는 정책은 앞으로도 부시 행정부의 가장 우선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 다루어야 할 국제적인 구상과 우선 순위가 높은 정책으로는 중동평화를 위한 로드맵(Middle East Roadmap to Peace), 개발 도상국들을 위한 밀레니엄 챌린지 기금(Millennium Challenge Account), 전세계적인 HIV/AIDS 긴급 구호 프로그램 등이 있다. 한편 국내 문제들의 경우, 부시 대통령은 고용 창출, 경제 성장, 의료 보험 및 복지 제도의 개혁, 교육 제도 개선, 및 에너지 효율성과 보존을 증진하기 위한 종합적인 에너지 계획의 개발 등을 주요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