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하원 연설 ( ‘악의 제국’ 연설)

Ronald Reagon
Ronald Reagon

로널드 레이건: 대 영국 하원 연설(“악의 제국” 연설)
대 영국 의원단 연설
1982년 6월 8일


상원의장, 하원의장:

영국 방문을 포함한 이번 순방은 긴 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미 서방의 위대한 두 도시 로마와 파리를 거쳐 왔고, 베르사이유에서 경제정상회담도 마쳤습니다. 경제정상회담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자유로운 국민들이 인플레이션, 실업, 무역, 경제개발 등의 중대한 문제를 협력과 연대의 정신 하에 손을 잡고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했습니다.

앞으로 다른 중요한 일정도 남아 있습니다. 이전 주 후반에 독일에서 우리와 NATO 회원국들이 공동 방위계획과 군축을 통해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미국의 최근 계획을 논의하게 됩니다.

이번 순방의 각 방문지는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순간이 나와 미국인의 마음 속에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거룩한 의사당에서 혈연을 만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모든 미국 국민을 대표하여 말씀 드리면, 우리는 영국에서 지극히 편안함을 느낍니다. 모든 미국인이 나와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생한 웅변으로 들은 바와 같이 이곳은 민주주의의 성전과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국민의 권리와 대의정치의 과정이 여기에서 논의되고 발전했습니다.

기관이 사람의 긴 그림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곳은 여기에 앉았던 모든 사람들의 긴 그림자이자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여기에 보낸 모든 사람들의 긴 그림자입니다.

이번 방문은 내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뒤 두 번째로 영국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영국 땅에 발을 들인 것은 1년 반쯤 전에 대처 수상이 워싱턴에 있는 영국대사관에서 외교만찬을 주최했을 때였습니다. 그 때 대처 수상은 대계단 위에서 조지 3세의 초상화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어도 크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처 수상은 지난 일은 지난 일로 치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그 후 양국간의 탁월한 친선관계를 볼 때 오늘날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가끔 있는 반란은 아주 좋은 일’이라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에 동의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웃음)

영국 다음으로는 본과 베를린을 가게 되는데, 이 곳에는 통제 받지 않은 힘의 섬찟한 상징이 서 있습니다. 베를린 시를 가로지르는 회색의 끔찍한 상처인 베를린 장벽은 세워진 지 이미 3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이 장벽을 세운 정권에 부합하는 상징입니다.

베를린 장벽에서 수 백 킬로미터 뒤에는 또 하나의 상징이 있습니다. 바르샤바 중심에는 2개의 수도에 대한 거리를 표시하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이 표지판은 한 쪽 방향으로는 모스크바를 가리키고, 다른 쪽 방향으로는 서유럽 통일체인 EC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표지판은 바르샤바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와 바르샤바에서 브뤼셀까지의 거리가 같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 표지판이 전하는 메시지는 ‘폴란드는 동구권도 서구권도 아니며, 유럽 문명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폴란드는 유럽 문명에 크게 기여한 바 있으며, 지금도 압제에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유럽 문명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이기 위해 또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기본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폴란드가 벌이고 있는 투쟁을 보면, 왜 이러한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866년 개혁법을 지지하며 글래드스톤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미래와 싸울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글래드스톤 시절, 빅토리아 시대의 낙관주의가 정점에 이르렀던 그 시절만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행진을 믿는 일이 지금 보다 쉬웠습니다.

전체주의라는 끔찍한 정치적 발명품으로 점철된 피로 얼룩진 세기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낙관적인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활력이 줄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들이 압제의 수단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연약한 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민주주의 스스로 날마다 증명하고 있으므로, 낙관적 생각을 가져도 좋습니다. 발트해의 스테틴에서 흑해의 바르나에 이르기까지 전체주의가 심은 정권은 그 정통성을 구축하는 데 30년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정권도 아직까지 자유 선거를 시행할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총검으로 심은 정권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의 힘은 소련의 한 반체제 조크에 담긴 진실을 방증합니다. 이 조크는 이렇습니다. “소련에서는 야당이 허용되더라도 1당 체제가 유지됩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야당에 가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웃음)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한 역사는 짧습니다. 이 점을 이해함으로써 여러분은 아직 어린 사촌 동생에 대해 더 큰 인내력을 발휘해 온 것 같습니다. 물론, 항상 인내력을 발휘했던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윈스턴 처칠 경이 격노하여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관 한 분을 가리켜 ‘내가 아는 케이스 중 유일하게 황소가 도자기 가게를 가지고 다니는 케이스’라고 말한 것이 기억 납니다. (웃음)

윈스턴 처칠 경은 위트가 넘치면서도 위대한 정치가의 특별한 특징, 즉 비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미래를 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역사의식, 과거에 대한 인식인 것입니다. 공통의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양국이 미래를 위해 협력할 수 있는 공통의 명분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쉽지 않은 세계를 물려 받았습니다. 이 곳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같은 개발과 과학과 기술의 선물이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기도 했지만, 이는 동시에 삶의 위험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세대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자유에 대한 위협과 우리의 생존 자체에 대한 위협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먼저, 세계대전의 위협이 있습니다. 대통령, 의회, 수상은 이 위협으로부터 단 하루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핵무기의 존재가 인류의 멸종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아는 문명의 종말을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현재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거리 핵전력 협상과 이번 달 후반에 시작될 전략군축협상(START)이 미국이나 서방 정책에 중요할 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협상에서 조기에 성과를 거두겠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고 흔들릴 수 없으며, 우리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양측의 전쟁 수단을 감축함으로써 전쟁의 위험을 줄이는 것입니다.

또한 현대 국가의 엄청난 힘이 인간의 자유에 미치는 위협이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치게 개입하는 정부, 즉 자유로운 경제성장 보다 정치적 통제가 우선하는 체제, 비밀경찰, 어리석은 관료주의 등이 어우러져 개인의 발전과 자유를 저해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와 유럽 전역에서 국가의 경제와 생활에서 공공부문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자연스런 의견의 불일치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면에서 우리 모두는 단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형태의 독재에 대한 혐오, 특히 전체주의와 우리 시대에 전체주의가 저지른 대숙청, 아우슈비츠, 다카우, 굴락, 캄보디아 등의 끔찍한 잔학행위에 대한 혐오를 우리는 공유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가 우리 시대를 돌아볼 때, 이들은 서방의 지속적인 자제력과 평화적인 의도에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1940년대와 1950년대 초 핵 독점이라는 위협을 영토의 확장이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기를 거부한 것이 바로 민주국가라는 점에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핵 독점이 공산세계의 손에 있었더라면, 유럽과 세계의 지도는 오늘날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폴란드 자유노조를 억압하고, 아프가니스탄과 동남 아시아에서 화학무기와 독극물을 전쟁에 사용한 것은 민주국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앞에 두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우리는 엄청난 딜레마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종말의 예언, 반핵 시위, 서방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원하지 않지만 참여해야 하는 군비경쟁 등이 그것입니다. 동시에, 전세계의 전체주의 세력이 인간 정신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을 계속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파괴와 갈등을 모색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입니까? 문명이 원자의 폭발 속에서 사라져야 합니까? 자유가 전체주의적 악의 세력의 조용하고 치명적인 확장 속에서 시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윈스턴 처칠 경은 전쟁의 불가피성은 물론 전쟁이 임박했다는 사실조차도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처칠 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련이 전쟁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소련이 원하는 것은 전쟁의 과실이며 그 힘과 독트린의 무한한 팽창입니다. 시간이 남아있는 오늘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전쟁의 영구적인 예방과 모든 국가에 최대한 빨리 자유와 민주주의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며, 우리는 분기점에 서있습니다.

역설적인 의미에서 칼 마르크스의 이론이 맞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커다란 혁명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질서의 요구가 정치질서의 요구와 직접 충돌하는 위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배하지 않는 자유 서방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고향인 소련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부인함으로써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고 있는 것은 바로 소련입니다. 소련은 또한 깊은 경제적 난관에 봉착해 있습니다. 1950년 이래 GNP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으며, 현재 GNP는 1950년 당시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패의 효과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구의 1/5이 농업에 종사하는 국가가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련의 농업에서 허용되는 극히 일부분의 민간부문이 없다면, 소련은 기근의 위기에 처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민영 농장은 전체 농경지의 겨우 3%를 차지하고 있지만, 소련 농업생산의 거의 1/4을 차지하고 있고, 육류와 야채 생산의 거의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센티브가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가운데 과도하게 중앙집중화 된 소련의 경제체제는 최고의 자원을 파괴수단을 만드는 데 투입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축소와 군사생산의 성장이 어우러져 소련 국민의 삶에 심각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경제기반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치구조이며, 이는 정치적 힘이 생산적 힘을 해치는 사회입니다.

소비에트 실험의 이러한 쇠락은 우리에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서독과 동독,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 자유사회와 폐쇄사회를 비교할 때마다, 번영하고 국민의 요구에 대응하는 국가는 항상 민주주의 국가였습니다. 또한, 우리 시대에서 단순하지만 압도적인 사실 중 하나는 현대 세계에서 수 백만의 난민을 보았지만 이들이 모두 공산세계를 향해 떠나는 난민이 아니고 공산세계를 떠나는 난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날 NATO 방위선에서 NATO 군은 침략을 막기 위해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방위선의 반대편에서 소련의 군대 역시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자국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전체주의 통치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인류의 지성과 의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제학파건, 프랑스에서 나타난 소위 신 철학자들인 경우건 간에, 한 가지 요소가 그 정신적 작업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국가의 자의적 힘을 거부하는 것, 개인의 권리를 국가의 아래에 두는 것을 거부하는 것, 집단주의가 인간 최고의 본능을 억누른다는 깨달음 등이 그것입니다.

이집트 탈출 이후 역사학자들은 테르모필레 전투, 스파르타커스의 반란, 바스티유 감옥 습격, 제2차 세계대전 중 바르샤바 봉기 등 자유를 위해 희생하고 투쟁한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해 왔습니다. 최근 이러한 인간의 성향의 증거를 중앙 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 보았습니다. 몇 개월 동안 전세계의 뉴스 매체들은 엘살바도르의 내전을 취재했습니다. 날마다 우리는 고통 받는 말없는 국민들을 대신하여 억압하는 정부군과 싸우는 용감한 자유 투사를 부각시키는 이야기와 화면을 듣고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통 받는 이 말없는 국민들에게 원하는 정부를 선택할 투표의 기회가 부여되었습니다. 이로써 산 속의 자유 투사들의 실체가 갑자기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국민을 위해 민주주의를 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그 지지자를 위해 권력을 원하는, 쿠바의 지원을 받는 게릴라임이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투표하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위협했으며, 국민이 투표소에 가지 못하도록 수 백 대의 버스와 트럭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투표일에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사상 유례 없는 140만 명이 매복과 총격을 뚫고 수 마일을 걸어 자유를 위해 투표했습니다.

이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몇 시간 동안 차례를 기다려 투표했습니다. 참관인으로 이 곳에 갔던 연방의회 의원 중 한 분이 투표소로 오다가 소총에 맞아 부상당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습니다. 이 여성은 투표가 끝날 때 까지는 줄을 떠나 치료를 받는 것조차 뿌리쳤습니다. 게릴라로부터 투표하면 돌아오는 길에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은 할머니는 게릴라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죽이고, 내 가족도 죽이고, 내 이웃들도 죽일 수 있겠지만, 우리를 다 죽일 수는 없다.” 엘살바도르의 진정한 자유 투사는 젊은이와 노인과 그 사이의 세대를 망라하는 이 나라의 국민들이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미국에서는 이 선거 이후 엘살바도르에 대한 뉴스가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관심을 돌릴 다른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 대서양의 외딴 섬에서 젊은이들이 영국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돌 덩어리와 흙 몇 줌을 위해 젊은이들이 목숨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이들은 단순히 부동산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명분, 즉 무력 침략이 성공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며 국민들이 법치 하에서 이루어지는 정부의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박수) 45년 전에 이 원칙에 대한 보다 확고한 지지가 있었더라면 우리 세대가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의 피 흘림을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중동에서는 또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레바논입니다. 레바논은 너무도 오랫동안 내전과, 외국의 간섭과 점령의 비극을 겪어온 나라입니다. 레바논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세력은 싸움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이스라엘은 군대를 철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중동에서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도록 만드는 테러의 천형을 근절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분쟁지역 위에는 좀 더 깊고 긍정적인 패턴이 존재합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민주 혁명은 새로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인도는 집권당을 평화적으로 교체함으로써 중요한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는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확고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카리브 해 연안과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24개국 중 16개국이 자유롭게 선거로 정부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5년 동안 UN에 가입한 10개 개발도상국 중 8개국이 민주국가였습니다.

공산세계에서도 자유와 자결을 위한 인간의 자발적 욕구가 반복적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1953년 동독, 1956년 헝가리,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1981년 폴란드를 보면 이들 국가에서 일어난 자치 요구를 경찰국가가 얼마나 잔인하게 진압했는지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지금도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련 자체 내에서도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위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서방 민주국가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이 흐름이 계속될 것인지 결정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연약한 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금세기의 남은 기간 동안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적 이상의 점진적인 성장을 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공산정권에서는 민주적 변화를 고무하지 않아야 하지만 우익 독재정권에서는 민주적 변화를 고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이 좋은 의도로 그리 한 것처럼 이 이율 배반적 개념을 받아 들이는 것은 일단 국가가 핵 능력을 개발하고 나면 그 국민을 대상으로 제한 없이 공포정치를 해도 된다는 논리가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길을 거부합니다.

소련의 시각을 대변하며,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사상과 체제의 경쟁이 계속되어야 하며, 이는 긴장의 완화 및 평화와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강조한 바 있습니다.

소련의 체제가 그 스스로의 헌법을 준수하고, 그 스스로의 법을 지키고, 약속한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즉각적인 변화 보다는 과정, 방향 및 기본적인 태도의 변화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고무하지 않더라도 압제와 독재에 대항하는 폭발적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으며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소련 역시도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지도자의 정통성을 확보할 평화적 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체제는 근본적으로 불안한 체제입니다. 이 경우, 국가의 압제가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압제에 저항하게 만들며, 국민들은 필요한 경우 무력을 사용하여 저항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가 변화의 속도에 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하지만, 우리의 궁극적 목적을 선언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 행동을 취함에 있어서는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자유가 운 좋은 일부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 보편적인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확신을 확고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이는 다른 권리와 더불어 자유선거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UN 세계인권선언에서도 규정된 내용입니다.

내가 제안하는 목적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인프라, 즉 사람이 평화적인 수단으로 스스로의 문화를 스스로 개발하고 차이점을 조화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언론과, 노동조합과, 정당과, 대학을 보장하는 체제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문화적 제국주의가 아니며, 진정한 자결의 수단과 다원성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서로 크게 다른 문화와 역사적 경험을 가진 국가에서도 번영하고 있습니다. 어떤 국민이 민주주의 보다 독재를 선호한다고 말하는 것은 문화적 모욕이거나 그 이하입니다. 누가 자발적으로 투표권을 포기하고자 할 것이며, 독립적 신문 대신에 정부 홍보자료를 사고자 할 것이며, 노동자 중심의 조합 보다 정부를 선호할 것이며, 농토를 경작하는 자가 아닌 국가가 그 농토를 소유하기를 원할 것이며, 정부의 종교자유 억압을 원할 것이며,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여러 정당 보다 단일 정당을 원할 것이며, 민주적 관용과 다원성 대신에 엄격한 문화적 교조주의를 원할 것입니까?

1917년 이래 소련은 여러 국가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에게 은밀하게 정치적 교육과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교육과 지원이 이들 세력에게 폭력과 파괴를 고무한 바도 있었습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서유럽과 여타 지역의 사회민주 세력과, 기독교 민주 세력과 지도자들은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진보를 위해 우애조직, 정치조직, 사회조직 등에 열린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서독의 정치 기관들은 신생 민주국가의 노력에 지원을 제공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우방국들이 조치를 취한 것과 같이 미국도 추가 조치를 취하고자 합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조직의 의장과 여타 지도자들은 미국의 초당적 정치 기관들과 더불어 현재 힘이 커지고 있는 전세계 민주화 운동에 국가적으로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양 당 의회 지도자들과, 재계, 노동계, 여타 우리 사회 주요 기관 대표자들의 협조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들의 권고를 받고 이러한 기관들과 의회와 더불어 전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공통의 과업에 나설 때를 고대하는 바입니다.

미국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망라하는 국가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때입니다.

우리는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과도 논의를 할 계획입니다. 유럽이사회에는 내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릴 회의에 민주국가의 의원들을 초청하자는 제안이 제출되어 있습니다. 이 특별한 회의에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활동을 지원할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년 11월 워싱턴에서는 자유선거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립니다. 내년 봄에는 미합중국 대법원장이 주최하는 전세계 헌법주의 및 자치 권위자들이 모인 회의가 열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러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서 실용적 경험을 쌓은 판사, 철학자, 정치인 등이 원칙을 실제로 옮기는 방법과 법치를 증진하는 방법을 논의하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소련이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는 사상과 가치의 경쟁을 평화적이고 호혜적인 기반 위에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를 소련이 우리와 함께 논의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TV로 소련 국민들에게 연설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브레즈네프 서기장에게 TV로 미국 국민들에게 연설할 기회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언론인 패널이 상호 TV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주요 이슈를 논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전한 바 있습니다.

비록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느낌을 주지 않기를 바라지만, 소련은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소수의 집권 엘리트들은 억압을 강화하고 해외로 도발하여 국내 소요를 완화시키려 하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의도적으로 더 현명한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국민에게 자기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허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곧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민주화 운동의 강해진 힘이 자유를 향한 전세계적 운동과 맞물려 군축과 세계평화의 전망을 강화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5월 9일의 연설을 포함하여 다른 자리에서도 우리의 이익을 지키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소련에 대한 서방의 정책이라는 요소를 논한 바 있습니다. 지금 내가 설명하는 것은 장기적인 계획이자 희망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행진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의사표현에 재갈을 물려 온 다른 독재를 떠난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역사의 잿더미에 두고 떠날 것입니다. 중거리 전력 협상에 대해 제로옵션(Zero-Option) 계획을 추진하고 전략 탄도 미사일 탄두를 1/3 감축하기로 하는 우리의 제안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NATO를 강화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군사력이 평화의 필수요건이지만, 이러한 군사력이 절대 사용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이를 유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요인은 폭탄과 로켓이 아니라, 의지와 사상의 시험이며, 정신적 결의의 재판이며, 우리가 가진 가치,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신념이며, 우리가 헌신하는 이상입니다.

영국 국민들은 강한 지도력과 시간과 약간의 희망이 있으면 선의 힘이 악의 힘을 궁극적으로 이긴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자치의 요람이자 의회의 모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인류에게 영국이 기여한 바의 위대함, 위대한 문명 사상, 개인의 자유, 대의정치, 신 아래에서의 법치 등이 있습니다.

서방에서 우리 중 일부가 인류의 고통과 불완전한 세계의 고난을 완화하는 데 그처럼 큰 역할을 한 이러한 이상을 대변함에 있어 소극적인 이유를 궁금하게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러한 방대한 자원을 사용하기를 꺼리는 것을 보니 대공습 당시 집이 폭격을 받은 할머니의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구조 대원들은 집안을 살펴 보다 할머니가 계단 뒤에 숨겨놓은 브랜디 한 병을 발견했고, 이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쓰러지지 않은 물건이었습니다. 마침 할머니가 의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구조대원 중 한 명이 코르크 마개를 열어 할머니의 입에 브랜디를 한 방울 떨어뜨리려 했습니다. 이 때 할머니는 의식이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여기 놓고 저건 저기 놓고, 그건 제 자리에 놔. 비상용이거든.” (웃음)

비상시는 지금입니다. 더 이상 소극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강점을 활용해야 합니다. 희망을 제시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 확률도 높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시기에, 이 섬나라는 용기로 빛났고, 윈스턴 처칠 경은 영국의 적에 대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결국, 영국의 적은 영국인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들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민주 국가들은 독재자가 우리를 과소평가 하게 함으로써 끔찍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봅시다. 그리고 대답해 봅시다.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며, 스스로 자유를 유지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 획득도 도와줄 각오를 갖춘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윈스턴 처칠 경은 전쟁에서 영국 국민을 위대한 승리로 이끈 후 승리의 열매를 향유할 수 있게 될 즈음에 선거에서 패했습니다. 그러나, 처칠 경은 국민의 자유가 어느 한 지도자의 운명 보다 더 중요함을 알고 명예롭게 수상 직을 떠났습니다. 역사는 처칠 경의 위대함을 독재자가 결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기억합니다. 처칠 경은 또한 우리에게 미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으며, 이 말은 거의 27년 전 하원 야당 지도자로서 처음 이 말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시의적절 합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위험과 우리가 무찌른 강한 적들과 우리가 좌절 시킨 모든 어둡고 치명적인 계략을 돌아 보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최악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제안한 이 과업은 우리 세대가 끝나도 완수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최악을 지나왔습니다. 이제 다음 세대의 믿음과 인내를 동원하게 될 자유를 향한 운동을 위해 중요한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평화와 정의를 위해,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운명을 마침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주: 레이건 대통령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의 로열 갤러리에서 오후 12시 14 분에 이 연설을 했다. 그 전날 저녁, 대통령은 잉글랜드 윈저 근교의 윈저 성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영접을 받았다. 그 후 여왕은 레이건 대통령을 위해 특별 만찬을 열었다. 6월 8일 아침, 대통령과 여왕은 윈저 성에서 함께 승마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