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Martin Luther King Jr
Martin Luther King Jr

흑인 미국인들에 관한 한, 브라운에 대한 국가의 반응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렸으며, 주 입법부들이나 연방의회도 그들의 대의 실현을 도울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강력한 민권법안만이 미국 흑인들에게 동등한 법의 보호를 보장하는 운동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1963년 6월 11일, 그는 그같은 법안을 의회에 제안하면서, “우리가 자신을 위해 원할만한 동등한 처우를” 제공할 입법을 요구했다. 의회의 남부 출신 의원들은 위원회에서 그 법안을 저지했고, 민권 지도자들은 그 조치를 밀어 줄 정치적 동력을 구축할 방안을 모색했다.

노동 지도자 겸 오랜 민권운동가인 A. 필립 랜돌프는 그 문제를 극화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대규모 행진을 촉구했다. 그는 인종을 초월한 민권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흑인 뿐 아니라 백인 단체의 참가도 환영했다. 과거 서로 경계했던 많은 다양한 민권운동 단체들이 참가에 동의했다. 전국유색인종진보협회(The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인종평등회의(the Congress of Racial Equality),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the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the 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와 도시연합(the Urban League)이 모두 그들의 견해 차이를 뒤로하고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 지도자들은 심지어 단합을 위해 다소 과격한 운동가들의 발언 수위를 낮추는데 합의했고, 그 행진이 실제로 민권법안의 통과로 이어질 것을 희망한 케네디 행정부와 긴밀히 협조했다.

1963년 8월 28일, 구름이 거의 없는 하늘 아래, 5분의 1이 백인인 25만 여 시민들은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회합을 위해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근처에 모였다. 연사의 명단은 거의 모든 사회 계층의 연사들을 망라했는데, 월터 로이터 같은 노동운동가, 성직자, 시드니 포이티어와 말론 브란도 같은 명배우, 존 바에즈 같은 포크싱어(folksinger) 등이었다. 각 연사는 15분을 할당 받았지만 그 날은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의 한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차지였다.

바로 마틴 루터 킹 2세 박사는 애당초 차별로 묶인 사회에서 자유를 실현하려는 미국 흑인들의 고통을 표현할 짧고도 다소 공식적인 발언을 준비했었다. 그가 막 앉으려 했을 때 복음 가수 마할리아 잭슨이 “당신의 꿈을 말해줘요, 마틴, 그들에게 당신의 꿈을 말해줘요!”라고 소리쳤다. 청중의 함성에 고무된 킹은 그의 과거 발언 중 일부를 끌어냈고, 그 결과는 미국에서 이정표적인 민권 발언이 되었다. 즉, 모든 인종과 피부색과 배경을 가진 모든 국민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미국에서 함께 나누는 꿈이었다.

추가 자료: 허버트 카핑클, 흑인들이 행진할 때: 워싱턴의 행진…(1969); 테일러 브랜치, 물살을 가르며: 킹 시대의 미국, 1954-1963 (1988); 스티븐 B. 오우츠, 트럼펫을 울려라: 마틴 루터 킹 2세의 생애(1982).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963)

우리 역사에서 자유를 위한 가장 훌륭한 시위가 있던 날로 기록될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백 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령에 서명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 상징적인 자리입니다. 그 중대한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시들어가고 있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횃불로 다가왔습니다. 그 선언은 오랜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즐겁고 새로운 날의 시작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흑인들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백 년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인종 차별이라는 속박과 굴레 속에서 비참하고 불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 년 후에도 흑인들은, 이 거대한 물질적 풍요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빈곤의 섬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 년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끔찍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국가로부터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할 시기에 온 것입니다. 이 나라의 개척자들이 헌법과 독립선언문에 훌륭한 구절을 적어 넣었을 때, 그들은, 모든 미국인이 상속받게 되어 있는 약속어음에 서명한 것입니다. 그 약속어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삶과 자유, 행복 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 시민의 피부색에 관한 한, 이 약속어음이 보장하는 바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미국은, 이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흑인들에게 잔고부족이라는 도장이 찍힌 채 되돌아오는 불량어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은행이 파산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있는 거대한 기회의 금고에 잔고가 부족하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갖고 있는 이 수표를 현금화하기 위하여 여기에 왔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즉시 풍성한 자유와 정의를 확보해 줘야 할 수표말입니다.

또한 우리는 “바로 지금“이라고 하는 이 순간의 긴박성을 미국인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선 냉정을 되찾으라는 사치스러운 말을 들을 여유도, 점진주의라는 이름의 진정제를 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어둡고 외진 인종 차별의 계곡에서 벗어나 햇살 환히 비치는 인종간의 정의의 길에 들어설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신의 모든 자손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줄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인종간의 불의라는 모래 위에서 형제애라는 단단한 바위 위로 올라서야 할 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긴박성을 간과하고, 흑인의 결의를 과소 평가한다면, 그 것은 이 나라에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흑인들의 정당한 불만이 표출 되는 이 무더운 여름은 자유와 평등의 상쾌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만일 이 나라 가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면, 흑인이 좀 진정을 하고 만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친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흑인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기 전에는 미국에 휴식도 평온도 없을 것입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밝은 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 나라의 기반을 뒤흔드는 폭동의 소용돌이가 계속될 것입니다.

정의의 궁전으로 이르는 출발점에 선 여러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정당한 위치를 찾을 때까지는, 나쁜 행동을 해서 죄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입니다. 비탄과 증오로 가득 찬 술잔을 들이키는 것으로 자유를 향한 갈증을 달래려 하지 맙시다.

위엄과 원칙이 있는 높은 곳을 향한 투쟁을 영원히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의적인 저항이 폭력으로 변질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또다시, 우리의 힘이 영혼의 힘과 맞닿을 수 있는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 흑인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저 새롭고도 훌륭한 투쟁 정신이 백인의 불신을 받는 데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백인이 증명하듯이, 우리의 많은 백인 동지들은 그들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과 이어져 있으며, 그들의 자유가 우리의 자유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깨 닫고 있습니다. 우리 혼자서만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 앞으로 나아가면서, 더 전진해야 한다는 맹세를 해야 합니다.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인권운동가에게 “언제가 되면 만족하겠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흑인이 경찰의 무지막지한 폭력의 공포에 희생되고 있는 한, 우리에게 만족이란 없습니다. 흑인이 여행하다가 피곤에 지쳤을 때 고속도로 근처의 여관이나 시내의 호텔에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이 이주한다고 해야, 고작 작은 흑인 거주지에서 더 큰 흑인 거주지로 가는 것이 전부일 때, 우리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미시시피의 흑인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뉴욕의 흑인이 마땅히 투표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정당성이 힘찬 흐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이 재판을 받다가 여기 오게 되었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좁은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다가 도리어 기소되어 두들겨 맞거나, 경찰의 야만스런 폭력에 고통받는 지역에서 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오는 갖가지 고통을 겪는 데는 베테랑입니다. 그런 고생이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계속 일하십시오.

미시시피로 돌아가십시오. 앨라배마로,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조지아로, 루이지애나로 돌아가십시오. 우리들의 현대적인 도시인 빈민가로, 흑인 거주지로 돌아가십시오.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명심하고 계십시오. 이제 절망의 계곡에서 뒹굴지는 맙시다.

나의 친구인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도,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이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 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 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주지사가 늘 연방 정부의 조처에 반대할 수 있다느니, 연방법의 실시를 거 부한다느니 하는 말만 하는 앨라배마주가 변하여,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 자매처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내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는 신념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개척하여 희망의 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이 나 라의 이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을 형제애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신념이 있으면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며,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자식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조국은 자유의 땅,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에서 자유가 노래하게 하라.“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가 뉴햄프셔의 거대한 언덕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뉴욕의 큰 산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펜실베니아의 앨러게니 산맥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 산맥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굽이진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조지아의 스톤 마운틴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모든 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모든 마을, 모든 부락, 모든 주와 도시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모든 자손들,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교도, 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가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 날이 말입니다.

“드디어 자유, 드디어 자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