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게네디 대통령이 남부 침례교회 지도자들에게 한 연설

John F. kennedy
John F. kennedy

남부 침례교회 지도자들에게 한 연설(1960년)


존 F. 케네디

신세계로 이주해 온 신교도들은 가방 속에 천주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등 다양한 것들을 담아 가지고 왔다. 천주교도들이 신세계의 초기 정착자에 속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미합중국이 된 동부 13주에서 소수세력에 지나지 않았다. 19세기 중엽에 의미 있는 수의 천주교도들이 미합중국으로 이주해 오면서부터 반 천주교 정서가 강하고 추한 정치, 사회적 현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아일랜드 천주교도들이 시, 군 및 주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지만, 천주교도로서 최초로 전국 차원의 공직을 도모한 사람이 나온 것은 1928년이 되어서였다. 이 때 당시 인기가 높았던 뉴욕 주지사 알프레드 임마누엘 스미스(Alfred Emanuel Smith)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천주교도가 대통령이 되면 교황의 ‘명령’을 받게 될 거라는 두려움, 즉 반 천주교 정서가 작용하면서 스미스는 선거에서 패배했다. 감리교 주교인 애드나 레너드(Adna Leonard)는 ‘주지사는 교황의 반지에 입맞출 수 없으며 백악관의 착탄거리(着彈距離)에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했다. 자유주의 개신교도들까지도 염려하게 되었다. 크리스천 센츄리(Christian Century)는 ‘위대한 미합중국 대통령의 집무실에 이방의 문화와, 중세의 라틴 정서와, 비민주적인 위계와, 외국의 실력자를 상징하는 자를 앉히는 것을 염려 없이 볼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스미스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존 F. 케네디가 1960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될 때 까지는 천주교도의 백악관 입성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케네디 후보는 모든 천주교도가 교황의 명령을 조건 없이 따라야 한다는 옛 유언비어를 남부의 여러 개신교 단체가 아직도 믿고 있음을 알고 당혹스러워 했다. 케네디 후보는 마침내 이 이슈를 정면 돌파하기로 결정했으며, 1960년 9월 12일 대 휴스턴 목사회(Greater Houston Ministerial Association)에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에 따르면, 이 곳에서 케네디 후보는 지적으로 존중할만한 이슈로서의 종교 문제를 선거운동에서 배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반 천주교 정서를 그처럼 쉽게 없앨 수는 없었지만, 케네디 후보는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함으로써 정치적 타격을 편견을 이성으로 극복할 수 없는 유권자에게만 국한시킬 수 있었다. 그 해 11월에 케네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미국 정치에 존재하던 천주교도에 대한 장벽이 사라졌다.

관련 추가자료: T. H. 와이트, 1960 대통령 만들기(The Making of the President 1960), 1961.

남부 침례교회 지도자들에게 한 연설

내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밤 논의의 주제는 소위 종교 이슈입니다. 그러나, 이 이슈로 들어가기 전에 1960년의 대통령 선거에 훨씬 더 중요한 이슈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플로리다 연안 90마일 지점까지 뻗치고 있는 공산주의의 확산 문제, 미국의 힘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에 의해 우리 대통령과 부통령이 모욕적인 예우를 받은 문제, 서 버지니아에서 내가 본 굶주린 어린이의 문제, 치료비를 낼 능력이 없는 노인 문제, 농장을 포기해야 하는 가족들의 문제, 그리고 슬럼은 너무 많고 학교는 너무 적고 달과 우주를 개발하는 데는 너무 늦게 나서고 있는 미국의 문제 등이 중요한 이슈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운동의 결과를 결정지을 진정한 이슈입니다. 그리고, 이 진정한 이슈들은 종교적 이슈가 아닙니다. 전쟁과, 굶주림과 무지와 절망에는 종교의 장벽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천주교 신자이고 지금까지 천주교 신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선거의 진정한 이슈가 가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다 책임의식이 높지 못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몰고 간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에게만 중요한 이슈인 내가 어떤 종교를 믿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미국을 믿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제 분명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힐 필요성이 있다 하겠습니다.

내가 믿는 미국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확고하고, 천주교 고위 성직자가 (천주교 신자라 하더라도) 대통령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고, 개신교 목사가 교구민에게 특정인을 지지하도록 명령하지 않고, 교회 또는 교회계열 학교에 공공자금이나 정치적 특혜가 제공되지 않고, 단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또는 유권자인 선거구민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공직에 진출할 기회가 제한되는 사람이 없는 그러한 미국입니다.

의심의 손가락이 금년에는 천주교도를 겨누고 있지만, 다른 해에는 유태교도, 퀘이커 교도, 일신론자, 또는 침례교도를 겨눌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버지니아 주의 침례교 목사 박해가 제퍼슨이 주도한 종교자유 성문법의 원인이 된 바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피해자가 되지만, 내일은 여러분이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국가가 큰 위험에 빠졌을 때 조화로운 사회의 뼈대가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믿는 미국은 언젠가 종교적 편협성이 끝나고, 모든 사람과 모든 종교가 평등하게 취급되고, 모든 사람이 자기가 선택한 교회를 가거나 가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천주교 표도 없고, 반 천주교 표도 없고, 어떠한 블록 투표도 없고, 일반인 수준과 목회자 수준에서 모두 천주교도와, 개신교도와, 유태교도가 과거의 업적에 오점을 남긴 경우가 많았던 경멸과 분열의 태도를 자제하는 대신 미국의 형제애라는 이상을 증진하는 그러한 미국입니다.

이러한 미국이 바로 내가 믿는 미국입니다. 이는 내가 믿는 대통령 직이 어떠한 것인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은 어떠한 종교집단의 수단이 될 정도로 낮아져도 안 되며, 자의적으로 특정 종교집단의 구성원이 이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저지함으로써 그 순수성을 해쳐서도 안 됩니다. 내가 믿는 대통령은 종교에 대한 견해가 오로지 대통령 개인의 사적인 문제로서 국가가 이를 대통령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대통령 직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지도 않는 그러한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나는 제1차 헌법 수정안의 종교자유 보장을 뒤엎기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도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종교적 요건을 우회적으로라도 부과함으로써 헌법 제6조를 뒤엎으려 노력하는 자들도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자유 보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공개적으로 이를 폐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 될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통령은 그 공적 행동으로 모든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만 아무에게도 빚지는 바 없으며, 임무 수행을 위해 참석해야 하는 적절한 모든 행사, 예배, 또는 만찬에 참석할 수 있으며, 대통령 직의 수행이 어떠한 종교적 맹세, 의식, 또는 의무에 의하여 제한 또는 제약되지 않는 그러한 대통령입니다.

이러한 미국이 내가 믿는 미국입니다. 또한, 이것이 내가 남태평양에서 싸워 지켰고 내 형님이 유럽에서 목숨을 바쳐 지킨 그러한 미국입니다. 당시 어느 누구도 우리가 ‘분열된 충성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 암시한 바 없으며, 우리가 자유를 믿지 않는다거나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자유를 위협하는 불충한 집단에 속한다고 암시한 바 없습니다.

사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천주교 외 종교 신봉자의 공직 취임을 봉쇄한 신앙서약을 피해 이 땅으로 오면서, 헌법과, 권리장전과, 종교자유를 위한 버지니아 성문법을 위해 싸우면서, 또 내가 오늘 방문한 성지 알라모 요새에서 싸우면서 목숨으로 지킨 그러한 미국입니다. 보위(Bowie)와 크로켓(Crockett)과 나란히 푸엔테즈(Fuentes)와 매커퍼티(McCafferty), 베일리(Bailey)와 베딜리오(Bedillio)와 케리(Carey)가 목숨을 잃으면서 이 요새를 지켰으나, 어느 누구도 이들이 천주교 신자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합니다. 종교의 시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나는 여러분께 이러한 전통에 따라 내가 의회에서 보낸 14년의 궤적을 토대로, 바티칸 대사 파견에 반대하고, 종교계 학교에 대한 위헌적 보조에 반대하고, 나도 공립초등학교를 다녔지만 공립초등학교의 보이콧에 반대를 선언한 나의 단호한 입장을 토대로 나를 판단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본 것과 같이 대개 다른 나라, 다른 세기의 천주교 지도자들이 미국의 상황과 거의 관계 없이 한 말을 의도적으로 맥락과 달리 인용하면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강력히 지지한 미국 주교들의 1948년도 선언을 역시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책자와 인쇄물을 토대로 나를 판단하지 않으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나는 이렇게 인용된 내용이 나의 공적인 활동을 구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와 관련하여 나는 다른 종교의 자유로운 의식을 억누르거나, 금지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천주교이건 개신교이건 간에 종교집단이 국가를 이용하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이는 어떤 시대, 어떤 사람, 어떤 국가의 박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나는 천주교도에게 이러한 의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을 여러분과 내가 모두 동일한 열정으로 비난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종교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언급하기 보다는 프랑스와 아일랜드 등 국가에서의 천주교의 기록을 언급할 것이며 드골이나 아데나워 같은 정치가의 독립성을 언급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나의 견해를 강조 하겠습니다. 신문에서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바와는 달리, 나는 천주교 대통령 후보(Catholic candidate for President)가 아니라 그냥 대통령 후보로서 종교로 천주교를 믿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나는 공적인 사안에 대하여 제 종교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종교가 나의 입장을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산아제한, 이혼, 검열, 도박, 또는 여타 어떠한 이슈에 대해서도 이러한 견해에 따라, 국익을 위해 나의 양심이 시키는 바에 따라, 외부 종교집단의 압력이나 명령에 관계 없이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어떠한 힘이나 처벌의 위협이 있더라도 내가 달리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나의 공적 임무 수행을 위해 양심이나 국익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물론 이러한 이해상충의 가능성이 작게나마 있을 것으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만, 대통령 직을 사임할 것입니다. 또한, 양심적인 공직자라면 누구라도 그리 할 것으로 희망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천주교도나 개신교도 중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사과할 뜻이 없으며, 이번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내 견해나 내 종교를 부인할 뜻도 없습니다. 진정한 이슈를 놓고 내가 패한다면 나는 최선을 다했고 공정한 평가를 받았음에 만족하고 상원의 제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결과가 4천 만의 미국 국민이 침례를 받은 날부터 대통령이 될 기회를 잃게 되는 것과 유사한 이유로 결정된다면, 전세계의 천주교도와 비 천주교도의 눈에, 역사의 눈에, 우리 국민의 눈에 패배자가 되는 것은 바로 우리 나라 전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내가 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나는 대통령 선서를 이행하기 위해 마음과 영혼의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대통령 선서는 내가 연방의회에서 14년 동안 해 온 의원 선서와 실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나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다음의 선서를 이행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충실히 집행하며 나의 최선의 능력을 다하여 미국 헌법을 보전하고 보호하고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출처: 뉴욕타임즈, 1960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