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예술

시각 예술
시각 예술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줄지어 서 있는 수 많은 박물관과 기념관은 미국 사회와 미국 예술의 과거와 현재를 말해주는 방대한 예술품 및 문화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에 가장 최근 설립된 명소인 국립미술조각공원은 시원한 나무그늘, 물, 현대 예술품 사이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1820년 형성된 허드슨 리버 파는 널리 알려진 미국 최초의 미술 학파다. 음악과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들이 신세계 미국이 지닌 고유한 주제를 인식할 때까지 미술계의 발전이 늦춰진 것이다. 허드슨 리버 파의 직접적이고 꾸밈없는 비전은 미국의 시골을 화폭에 담은 윈슬로 호머 같은 후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중류층 도시민의 삶을 그린 토마스 에이킨스는 타협을 모르는 사실주의자로, 조금도 물러섬이 없는 그의 정직한 표현은 고상한 낭만적 감상주의를 선호하던 경향을 위축시켰다. 1900년 이후의 미국 미술과 조각은 상당 부분 전통에 대한 반항의 연속이었다. “예술적 가치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던 로버트 헨리의 학파는 도시 삶의 지저분한 면을 묘사한 덕분에 비평가에게 “쓰레기통(ash-can)” 학파라는 이름을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뉴욕의 젊은 예술인 집단이 미국 최초의 고유 미술 운동인 추상표현주의를 통해 해외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추상표현주의를 이끈 인물은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였다. 하지만, 다음 세대 미술인들은 이와는 사뭇 다른 추상이라 할 수 있는 혼합매체(mixed media)를 선호했다. 그 중에서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는 사진, 신문기사, 버려진 물건을 혼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앤디 워홀, 래리 리버스,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비롯한 팝 아트(pop art) 미술인들은 코카콜라 병, 수프가 들어있는 통조림 통, 연재만화 등 미국 대중문화의 일상적 이미지와 사물에 풍자를 가미해 그들만의 고유한 작품을 제작했다. 오늘날 미국 미술인들은 특정 학파나 양식, 또는 단일 매체에 자신들을 구속시키지 않는다. 미국이 20세기 세계 미술에 기여한 가장 큰 공로라면 ‘조롱하는 장난기(mocking playfulness)’라고 할 수 있는데,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핵심적 목적이 미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논의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동시대 미술인은 학파, 양식, 또는 단일 매체를 고집하지 않는다. “미국 미술”은 더 이상 단순한 지리상의 문제도 아니며, 국가의 기원이나 관점의 문제도 아니다. 시장의 세계화, 국경을 넘은 커뮤니케이션,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 다니는 예술인, 이 모든 것이 확고한 국가 정체성이 사라진 미술세계의 형성에 기여했다. 이제는 미국의 동시대 미술을 일련의 형식적 발전이나 질서 정연한 미술운동의 연속으로 묘사할 수 없다. 미술은 사방에서 우리에게 융단폭격을 가하듯 쏟아지는 다양한, 때로는 모순되는 정보를 여과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모든 학문분야, 모든 미술전통, 모든 표현양식을 자유롭게 빌려다 쓰는 동시대 미술은 그것을 만들어 낸 이 세상 만큼이나 복잡하고 도발적이며, 상당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