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olly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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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세계 연예계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분야다. 1900년대 초, 영화 매체가 아직 생소했을 무렵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 영화 산업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입장료로 1니켈(5센트)을 받은 데서 유래한 소규모 극장, 니켈로디온(nickelodeon)에서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사업을 통해 성공을 거두었다. 몇 년 후, 사무엘 골드윈, 칼 래믈, 아돌프 주커, 루이스 B. 메이어, 워너 브라더스 같은 야심찬 사람들이 영화제작 부문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기업 형태인 영화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당시 주요 스튜디오는 캘리포니아주 LA, 할리우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30년과 1940년대, 소위 할리우드의 황금시대를 거치면서 스튜디오들은 연간 400편 가량의 영화를 쏟아냈고, 미국 전역에서 1주일에 9천만 명 정도의 청중이 극장을 찾았다. 영화 제작은 확고한 사업으로 자리잡았고 영화 회사는 소위 스튜디오 체제 운영방식을 통해 수익을 거두었다. 주요 스튜디오는 수 천 명의 직원을 두고 전국적으로 수 백 개의 영화관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체 제작한 영화를 상영했기 때문에, 한편으로 스튜디오는 끊임없이 새 영화를 공급해야 했다. 이렇게 조직화된 체계를 통해 청중에게 상당히 높은 품질의 즐거움을 제공했다는 점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매 영화마다 큰 성공을 거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만큼 꾸준하게 청중에게 영화 보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40년대, 두 가지 강력한 요인이 스튜디오 체계를 공격했다. 연방 정부의 반독점 조치 때문에 영화제작과 영화상영이 분리되었고, 미국 가정에 TV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작영화 수는 급격히 떨어진 반면 평균예산은 치솟았다. 할리우드는 사람들이 TV에서는 볼 수 없는 웅장한 광경을 청중에게 제공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블록버스터 신드롬은 그 후 꾸준히 할리우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화제작 자체 예산에다 배우, 스텝, 스튜디오 운영진, 거래 중개인에게 지불하는 금액까지 더해서 생각하면, 요즘 만드는 영화가 일반 청중의 취향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 실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거나 엄청난 실패로 끝나는 경향이 짙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난 15년 동안 제작된 영화는 대부분 할리우드의 재정지원을 받았지만 상당히 독특한 비주류 작품도 많았다. 이렇게 절충주의(eclecticism)가 형성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소니 픽쳐스 클래식과 드림웍스를 비롯해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 및 배급을 전문으로 하는, 규모는 비교적 작지만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한 스튜디오의 영향이었다. 지금까지 혁신적인 미국 및 외국어 영화 진흥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제작자는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영화가 상업성이 짙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영화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려는 욕구와 독창적이고 선정적인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청중과 정서적 끈을 연결하고자 하는 시장중심 추세가 예술 창조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대부, The Godfather≫에서 ≪디 아워스, The Hours≫에 이르기까지, 지난 40년간 제작된 미국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상업적 성공과 예술성을 동시에 이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