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01 – 렉스 틸러슨 신임 국무장관은 어떤 인물인가

크리스토퍼 코넬
2017년 2월 1일


세계 각지를 누비는 석유회사의 경영자이자 엔지니어인 렉스 틸러슨이 미국의 신임 국무장관 겸 백악관 수석외교자문으로 취임했다.

틸러슨은 2월 1일 미국의 제69대 국무장관으로 상원의 인준을 받았다. 토머스 제퍼슨이 초대 국무장관을 지낸 바 있으며 직전 국무장관은 존 케리였다. 역대 국무장관 가운데 다섯 명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렉스 웨인 틸러슨은 1952년 3월에 텍사스 주 위치타폴스에서 바비 조 틸러슨과 패티 수 틸러슨의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미국 보이스카우트연맹에서 일하기 위해 감봉까지도 감수했던 제빵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스카우트 활동은 집안의 내력이었다. 열세 살에 이글 스카우트로 진급했으며 이후에는 연맹 총재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틸러슨은 지금까지도 보이스카우트 서약을 행동의 시금석으로 삼고 있다.

그의 가족은 위치타폴스에서 오클라호마 주 스틸워터와 텍사스 주 헌츠빌로 이주했다. 틸러슨은 2015년에 텍사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한 대담에서 그의 가족이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잔디를 깎거나 버스 차장으로 일하는 등 “늘 일을 했으며” 열여섯 살에는 오클라호마주립대 공과대학 건물에서 경비로 근무했다. 틸러슨은 처음에는 “엔지니어가 뭔지 전혀 몰랐”지만 그에 대해 알게 된 후에는 엔지니어를 목표로 삼았다.

드럼 연주자였던 틸러슨은 마칭밴드 장학생으로 오스틴 텍사스대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진학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과연 자신에게 대학이 맞는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교수 중 한 사람이 그를 이끌어주었고 결국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엑손은 갓 졸업한 토목 엔지니어를 텍사스 주 케이티에 배치했다. 틸러슨은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해야 했으며 석유 산업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틸러슨은 승진 가도를 달리면서 스물여덟 살에 매니저로 진급했으며 결국에는 석유 산업의 심장부인 텍사스를 중심으로 인접 주들의 경영을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1995년에 엑손은 그를 내전이 끝난 예멘으로 파견했다. 그는 사나에서 2년을 근무했다.

러시아로 근무지를 옮긴 그는 사할린과 카스피해 유전 시추에 관한 복잡한 거래를 담당했다. 틸러슨이 러시아에 머무는 14개월 동안 총리가 여섯 번 바뀌었으며 여섯 번째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틸러슨은 자신이 예멘과 러시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으로 자신과 엑손이 견지하는 입장에 추호도 의문이 들지 않도록 “매우 투명”했던 것을 꼽았다.

1999년에 합병된 엑손모빌은 러시아 근무를 마친 틸러슨에게 120개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는 “비행기에서 살다시피 했으며 각국 정부를 상대로 관계를 구축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았다”면서 “CEO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를 총괄부사장에 임명하고 최고경영자로 키웠으며 결국 그는 2006년에 그 자리에 올랐다.

틸러슨은 아내 렌다와의 사이에 네 명의 아들과 다섯 명의 손주를 두고 있다. 틸러슨 부부는 텍사스 주 바톤빌에 있는 농장에 살면서 말을 사육하고 훈련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취미 활동으로는 로데오와 미식축구를 즐긴다.

틸러슨은 워싱턴 정가에서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는 국제전략연구소(CSIS) 이사와 포드극장 지원사업회(Ford’s Theatre Society)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2013년에는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공학한림원의 회원으로 선출됐다.